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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7-03-25
언제나 너와 함께하고
 글쓴이 : 김종순목사
 
◆ 본문 : 여호수아 1장 15~17절

오늘도 좋은 밤입니다. 찬양 팀이 다 청바지, 청치마 입었는데 유빈아, 너 이리 나와 봐라. 이리 나와. 개성 있는 것도 좋지만 같이 어울리는 건 더 아름다운 거다. 돈이 없어서 청바지를 못산 거 같은데……. 5급 공무원, 5급 공무원. (네) ‘네’가 아니라 일어나야지. 청바지 하나 사줘?(아멘) 그래 너 오늘 다른 거 입고 와서 청바지 하나 얻어 입겠다. 감사해요. 목회생활하면서 또 부흥회 나가가지고 제가 지적하면 부담스럽지 않게 다 아멘으로 받아준 교인들에게 감사하고 또 그런 분들이 잘 돼요. 그냥 시키는 게 아니라 그게 복이라고 하는 것을 여러분이 그렇게 받아들이면 됩니다.

우리 윤희정 권사님이 처녀 때에 송내중앙교회 얘기를 들으면서 가장 부러운 게 뭔고 하면, 송내중앙교회는 해외여행을 많이 간다는 거였어요. 그래서 윤희정 권사의 소원이 남자도 결정 안 됐는데 무조건 송내중앙교회로 시집가야 되겠다는 거예요. 시집가면 틀림없이 해외여행 할 수 있으니까……. 그래서 마산에서 여기까지 시집을 온 거예요. 믿음가지고 온 것도 아니고, 남자 얼굴 쳐다본 것도 아니고, 순전히 여행가기 위해서 왔는데, 우리 교회가 선교여행을 참 많이 하는 교회죠.

이번에도 선교여행을 다녀왔는데, 사실 선교여행이라고 이름을 붙였지만, 30년 만에 처음으로 선교지가 없는 여행을 이번에 갔습니다. 거기 가이드 표현대로 이렇게 행복한 사람들, 이렇게 얼굴에 기쁨이 있는 사람들. 이렇게 서로 챙기고 가까운 사람들, 또 이렇게 사진을 많이 찍는 사람들, 그런 모습을 보면서 너무 자기도 행복했다고 하는 그런 얘기를 저에게 들려줘서 참 감사했습니다. 여행하면서 즐기는 모습을 보면서 저도 흐뭇했지만, 사실 목사인 저에게는 남다른 대만에 대한 아픈 기억이 있습니다.

30년 전에 대만으로 첫 번째 선교를 갔어요. 좀 앉아도 되죠? 사실은 저도 여행 따라 다니면서 좀 힘들었어요. 그래서 오늘 우리 박 목사님 보고 철야 좀 인도하라고 부탁해서 준비를 다 했는데 1시간 전에 마음이 바뀌었어요. 준비한 거 나중에 쓰고 오늘 내가 하겠다고 그랬어요. 30년 전에 기도하면서 대만선교여행을 계획을 하고, 대만에 계시는 여자목사님이 선교를 잘 한다고 하는 소식을 듣고 연락을 해서 첫날부터 우리와 동행을 했습니다. 제가 그런 얘기를 했어요. “우리는 놀러온 게 아니라 앞으로 대만에 선교하기 위해서 왔으니까 선교할 장소를 알려주고 비용이 얼마나 들겠는지 얘기를 해 달라.”

그래서 얘기가 진행 중에 있었는데 그 여자목사님이 너무 기분이 좋았던 거예요. 그래서 우리 일행들보고 그때 한참 유행한 게 ‘야자 타임’ 아니에요? 그래가지고 우리 다 터놓고 얘기하자, 존댓말 하지 말고 같이 얘기하자 해가지고 이정순 권사님하고 뭐, ‘경희야’ ‘정순아’ 그러면서 되게 친하게 놀더라고요. 그러다가 뭐가 삐졌어. 그랬더니 선교사님이 나한테 항의하기를 “아니, 목사님교회 교인들은 권사가 목사한테 그렇게 반말해요?” 자기가 하자고 그래놓고는…….

거기서부터 선교가 틀어지기 시작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하나님이 막으셨구나.’ 우리가 생각한대로 되어지는 것만 축복이 아니라 때로는 막으시는 것도 하나님이에요. 결국은 거기가 막히면서 우리가 인도, 중국으로 방향을 돌리게 된 것이 바로 그런 이유에요. 이정순 권사가 너무 마음이 아픈 거예요. 자기는 그냥 즐기자고 얘기를 했는데, 선교사님이 그렇게 정색을 하면서 야단을 하니까 선교여행 막판에 막 우는 거예요. 저보고 우는 거예요.
“목사님, 내가 잘못했어요.”
“아니야. 네가 왜 잘못했냐? 아니야, 그럴 거 없어.”

참 많이 울었어요. 근데 돌아와서 얼마 있다가 암에 걸려가지고 또 얼마나 많이 울었습니까? 우리 모두가 다 울었죠. 제 가슴속에는 사랑의 이름으로 남은 이름들도 있지만, 슬픔으로 남아있는 교인들도 있어요. 그때가 우리 교회가 막 그냥 성령이 역사하고 병자들이 고쳐지고 할 때인데, 우리가 소원하는 거는 이런 능력, 하나님이 주신 능력으로 이정순 권사도 암에서 일어나길 원했는데, 그러나 죽어가면서 참 그때 들려준 이야기가 지금도 제 설교 속에 녹아들어 있는 게 뭔고 하면, ‘그래도 감사합니다.’하는 겁니다. ‘그래도 감사합니다.’하는 이 표현은 이정순 권사가 저에게 남겨준 거예요.
“비록 내가 암으로 죽어가지만, 신앙생활하면서 이렇게 잘 살아온 것, 지금까지 살아온 것이 그래도 감사합니다.”

여러분은 그냥 즐기고 다녔지만, 제 가슴속에는 이정순 권사의 그 모습을 가슴에 안고 이번에 대만에 선교여행을 다녀왔습니다. 목회하면서 늘 제가 여러분에게 말씀드리는 것처럼 사랑의 이름으로 남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때로는 이렇게 슬픔으로 내 가슴속에 남아있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또 우리 김주하 집사는 태어나서 부모도 모르고 지금 부모님 집에 입양이 되어서 그 부모님들이 자녀가 없었기 때문에 김주하를 참 사랑하고 잘 길렀어요. 간호대학을 나오고 간호사가 되었는데 나중에 암에 걸렸지요. 암 걸리니까 그렇게 기도하고 아주 교회에서 살다시피 했어요.

지금 제 목에 이 십자가를 걸게 된 이유가 암으로 죽어가면서 나에게 남긴 거예요.
“하나님이 나를 고쳐주시기를 원했지만, 내가 죽는다고 할지라도 내가 예수님을 알고, 내가 구원의 확신을 가지고 갑니다. 목사님, 사는 것만 축복이 아니라 죽어가는 것도 복이라고 하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목사님, 감사했습니다. 고맙습니다.”
그러면서 이 목걸이를 저에게 처음 걸어주셨어요. 그가 남긴 선물이에요. 여러분은 멋으로 이 십자가를 목에 거나보다 그러지만 20여년이 지나도록 저는 강단에 올라올 때마다 이 십자가를 걸면서 그때 김주하 집사가 들려준 그 얘기, 좋은 것만 축복이 아니라 때론 힘든 것도 축복이라는 말을 되새깁니다.

그러나 축복 중의 축복은 하나님을 알고 구원의 확신을 얻게 되었다고 하는 것이죠. 이게 가장 큰 축복이라고 하는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이번에 함께한 여러분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제가 하루 일찍 왔어요. 제가 있을 때에는 아주 깔끔하게 여행만 했어요. 근데 그 다음날 집에 와서 ‘카톡, 카톡’ 사진이 올라오기 시작하는데 보니까 물건들을 사가지고 이러고 다녀요. 나 있을 때는 아무것도 산 게 없어요. 근데 물건을 사들고……. 그게 또 뭐 자랑이라고 물건을 산 걸 가지고 들고 돌아다니는 사진을 찍어서 올리고……. 여러분은 이제 3분 동안 영상으로 물건을 들고 다니는 모습을 보게 될 겁니다.

감사합니다. 이번에 여행이 남녀선교회장단 선교여행인데, 이번에 34분이 함께 동행 했습니다. 우리 여선교회 총회장님 나와서 보고를 하시도록 하겠습니다.
“선교여행을 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기도해주시고 동행해 주신 목사님께 감사드립니다. 여행을 하면서 서로 웃고 감사해하는 모습들을 보면서 나도 이렇게 기쁘고 행복한데 우리 하나님은 얼마나 저 모습이 보기 좋을까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가이드 덕택에 장개석 총통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알게 되었는데, 그중에서 대만 국민들이 나를 죽일 리 없다면서 그분은 방탄차를 타지 않았다는 말에 지도자의 모습은 그래야하지 않는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기도해주신 성도님들께도 감사를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우리 남성우 권사님이 처음으로 우리하고 선교여행을 가셨는데 우리 여선교회장님하고 다정하게 사진을 찍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우스운 얘기로 ‘두 사람 사이가 이상해.’ 그랬거든요? 그랬더니 남성우 권사님이 아니라고, 아니라고……. 나 그렇게 어린아이 같은 모습을 처음 봤어요. ‘목사님, 아니에요. 아니에요.’ 아닌지는 지금 나와서 고백하겠습니다.
“선교여행을 다니시는 모습을 보면서 나도 같이 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는데 이번에 다녀오게 되어 너무 감사합니다. 제가 좀 많이 무뚝뚝한데 이번에 서로 가까워져서 기쁘고, 대만의 신비로운 협곡과 바위들이 있는 자연이 경이로웠습니다. 불편한 몸인데도 우리와 함께 동행 해주신 목사님께 감사드립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마지막으로 처음 선교여행 간 신은영 집사님, 어디 계세요? 신은영 집사님 나오세요. 우리 신은영 집사님은 한국에서는 약간 뚱뚱한편인데 대만에 가니까 아주 평균이에요.
“그동안 형편 상 선교여행을 가지 못하다가 이번이 목사님 은퇴 전에 마지막 여행이라는 생각에 용기를 내어 다녀왔습니다. 대만은 곳곳에 절이 있었고 정말 가뭄에 콩 나듯이 드문드문 십자가가 보이는 것이 안타까웠습니다. 우리 교회가 선교하는 교회라는 것이 자랑스러웠고 더 많이 기도해야 되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430년 동안 종노릇을 하다가 나와서 그 힘들고 어려운 40여 년 동안의 세월을 때로는 광야에서 때로는 홍해바다를 건너면서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을 했죠. 이제 저들이 거의 하나님의 약속의 땅을 바라볼 때에 ‘모세의 사명은 거기까지다.’ 그래서 모세를 대신할 후계자를 여호수아를 택하게 되었어요. 여호수아 1장을 보면 여호수아의 기도가 나옵니다.
“하나님, 모세와 같은 능력의 사람이 되게 해주십시오. 애굽땅에서 지금 여기 마지막 축복의 땅을 바라볼 때까지 인도하셨는데, 나는 모세에 비해서 능력도 없고, 아무리 생각해봐도 자신이 없습니다. 하나님, 내가 어떻게 이 불평 많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하나님 약속의 땅 가나안까지 저들을 인도할 수 있겠습니까?”

그때에 여호수아의 기도를 들으시고 하나님이 말씀하셨죠.
“여호수아야, 걱정하지마라. 언제나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다.”
제가 병상에서 들었던 ‘아맘’이라고 하는 단어와 여기에 여호수와 1장에 있는 말씀은 동일한 말씀이에요.
‘언제나 내가 너와 함께 하고’
그러면서 여기서 볼 수 있는 것은, 제가 설교하면서 늘 소개한 말씀이죠.
“네가 하냐? 내가 하지. 여호수아야, 너 걱정할 거 없어. 네가 하려고 하니까 힘들지 모든 것을 나한테 맡기고 기도해봐. 내가 너와 함께하잖아.”

왜 모세가 여호수아를 택했을까? 첫째는 겸손한 사람입니다. 여러분, 겸손하면 하나님이 쓰시는 거예요. 저는 목회하면서 지금까지 참 많이 지위, 어떤 자리에 유혹을 받았는데 목회하면서 한 가지 원칙이 뭔고 하면, 명예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나는 송내중앙감리교회 담임목사라는 거예요. 이번에도 은퇴할 때에 연회에서 제 경력, 설교, 활동한 사진 그걸 낸다고 그러는데 딱 한 가지만 하라고 했어요. ‘나는 송내중앙감리교회 목사다.’ 그게 내 전체에요.

그러니까 여호수아가 얼마나 힘들었겠습니까? 모세라고 하는 위대한 종이 지금까지 끌고 왔는데 자기 자신을 생각해보면 정말 너무 부족한 걸 깨닫는 거예요. “하나님, 내가 어떻게 저 이스라엘 백성들을 하나님의 약속의 땅 가나안 땅까지 저들을 인도하겠습니까? 내가 할 수 없습니다.” 그때에……. 여호수아 1장에서 저는 두 가지 말씀을 뽑았어요.
“네가 하냐? 내가 하지.”
여러분, 우리가 하는 게 아니에요. 우리가 사는 게 아니에요. 우리가 뭘 계획하고 노력하는 게  아니라는 거예요. 믿음의 사람은 절대로 내가 하는 게 아니라. 기도하는 거예요.

얼마 전에 27년 전 우리 교회를 다니다가 떠난 분이 전화를 했어요. 그때 스물 몇 살이었는데 지금 거의 50이 가까웠죠. 전화를 했어요. “참 이상하게도 목사님, 그때 송내중앙교회 다닐 때는 그런 걸 못 느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송내중앙교회가 그리워서 매 주일 홈페이지에 나오는 목사님의 설교를 들으면서 참 많이 울고 있습니다. 내가 그때 교회생활을 더 잘할 걸, 그때 기도를 더 열심히 할 걸. 왜 내가 지금 깨달은 걸 그땐 못 깨달았을까요.” 자기는 요즘 설교를 들으면서 참 많이 울고 있다는 거예요. ‘목사님 감사해요.’ 그러면서 우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그랬어요.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깨달은 거, 이거 복이다. 더 늦기 전에 깨달은 것이 복이다.” 여러분, 깨닫는 게 복이에요. 먼저 깨달으면 큰 복이고, 늦게 깨달아도 복이에요.

“절대로 여호수아야, 네가 한다고 생각하지 마라. 모세가 한 거 아니야. 내가 했지. 내가 모세를 통해 그렇게 일하게 만들어놨거든? 모세와 함께 한 내가 여호수아야, 너와도 함께 할 것이다. 걱정하지마라. 걱정하지마라.”
살아가면서 늘 저는 그런 간증을 참 많이 갖고 있어요. 처음 좋은 것보다도 나중에 좋은 게 진짜 좋은 거예요. 처음 만날 때 좋은 사람보다도 헤어질 때 좋은 사람이 정말 좋은 사람이에요. 지금 잘 사는 것보다도 갈수록 나아지는 게 복이에요. 우리 옆에 사람에게 축복을 빌어줍시다.
“지난날보다 앞으로 네가 잘될 것이다.”

저처럼 많은 사람을 만난 사람도 없을 거예요. 저는 뭐 부흥회를 다니면서 수많은 사람을 만났고, 또 우리교회에 수많은 분들이 들어왔다 나갔다 그러는데, 우리 교회 처음와가지고 “목사님 제가요 소문 듣고 왔는데, 걱정하지마세요. 제가 이제 이 교회 중직이 될 거고, 이제 목사님 목회를 잘 도와드릴 겁니다.” 어떤 때에는 그런 교인들이 날 붕 띄울 때가 있어요. ‘아, 좋은 사람 왔구나.’ 얼마가지 못해서 아니야. 나는 허금숙 권사가 참 마음에 들어요. 처녀 때 와가지고 그랬어요.
“목사님, 나는 시집 안 가요.”
“왜? 시집을 안 가?”
“나는 남자가 싫어요.”
“야, 목사도 남자인데?”
“아이고, 목사님이 무슨 남자에요? 목사님이지.”
말도 되게 툭툭하면서도 그 말씨가 참 이뻐요. 여러분, 제가 여러분에게 한 가지 부탁드리고 싶은 거는 믿음의 사람은 언어를 잘 써야 돼요. 이게 축복이에요. 이왕이면 좋은 말 하세요. 좋은 표현하세요. 그래야 돼요. 잘하다가도 말 한마디 때문에 ‘참 안 됐다.’ 그렇게 생각되는 분들이 있어요. 좋은 말 하세요.

그래서 나중 잘 되는 거, 이거 축복이에요. 저도 어려움을 많이 겪은 목사지만, 우리나라 속담처럼 젊었을 때 고생은 사서도 한다고 그러잖아요. 저는 참 젊었을 때 어려움을 당한 게 내 인생의 아주 좋은 이정표가 되었어요. 힘들고 어려운거 괜찮아요. 제가 굉장히 어려울 때에 영등포에 있는 목사님이 제 선배목사님인데 저를 불렀어요.
“김종순 목사가 그렇게 천막교회에서 고생한다는데, 김 목사, 우리 교회 저녁설교 좀 해. 내가 교인들에게 얘기해서 김 목사 너무 고생한다는데 좀 두둑하게 준비해줄 테니까 와.”

그렇게 말하는 선배님이 너무 고마워서 가서 열심히 땀을 뻘뻘 흘리면서 열심히 설교했어요. 제가 한창때는 땀이 얼마나 쏟아졌는지 설교하면 그냥 땀이에요. 그랬더니 목사님이 교인들 앞에서 김종순 목사, 이리 나오라고 하더니. 봉투를 하나 주더라고요. 우리교인들의 정성이니까 생활에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봉투를 줬어요. 여러분, 제 성질 급한 거 아시잖아요. 이게 궁금해 미치겠는 거예요. 교인들이 박수까지 쳤으니까 참 많이 준비한 거 아니에요? 난 지금도 잊어버릴 수가 없어요. 화장실에 가서 큰 기대를 가지고 열어보니까 2만원이에요. 화장실에서 그 봉투잡고 울었어요. 너무 부끄러웠어요. 그 다음부터는 어느 교회에서 오라고 하면 안 갔습니다.

그러면서 내 마음속에 결심한 게 뭔고 하면, ‘누굴 도와줄 때에 절대로 교인들 앞에서 박수치고 도와주지 말자. 어려운 목회자를 도와주고, 어려운 사람을 도와줄 때에 아무도 모르게 그렇게 주자.’ 그때의 그 교훈이 지금까지 우리 교회가 수많은 목회자들을 도와주고, 수많은 사람들을 도와주지만 한 번도 교인들 앞에서 박수치거나 전달하는 그런 게 없었어요. 그게 제 목회가운데 가장 가슴 아픈 일이에요. 여러분, 남을 도와줄 때에는 성경에도 있잖아요. 왼손이 하는 거 오른손이 모르게 해라. 아닌가? 오른손이 하는 거 왼손이 모르게 하는 건가?? 응? 어떤 게 맞아요? 우리 교인들은 뭘 물어보면 꼭 눈을 밑으로 깔아요.

지금은 개척교회도 그렇게 힘들고 그렇진 않지만 아직도 힘든 분들도 있어요. 근데 우리가 교회를 개척할 때만 하더라도 참 힘들고 어려웠어요. 제가 늘 가슴 아픈 간증을 하는 거 가운데 지금 목사가 된 우리 아들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이 없어요. 우리 딸에 대해서는 아픈 기억이 너무 있잖아요. 개척교회에서 제대로 못 먹여서 바짝 말라가지고 가방을 메고 다닐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엄마가 가방을 들고 애를 학교까지 데려가요.

제 아픈 기도 중에는 우리 딸 유진이에 대한 애틋한 기도를 했어요.
“하나님, 내가 잘못해서 이런 어려운 고비를 넘기며 목회의 길로 들어섰습니다. 하나님, 나 잘 먹자고, 나 잘살겠다고 목사 되는 거 아니잖아요. 하나님 당신이 시키셨잖아요. 난 굶을 수 있습니다. 괜찮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아이들 굶는 거, 그거만큼은 나 못 봐요. 우리 딸 하나님, 힘들게 자라지 않았습니까? 하나님, 아버지인 내가 딸을 제대로 기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를 주의 종으로 쓰신다고 하면 우리 딸 당신이 잘되게 하십시오.”

아마 제 기도가운데 제일 애끓어 오르는 기도가 우리 딸을 위한 기도였어요. 근데 하나님이 좋은 믿음의 남편주시고, 세계적인 생명공학박사 만들어주시고 우리 한국에서 의사들이 가면 우리 사위 밑에서 그걸 공부를 배워가지고 오고 그러는데, ‘아, 너무 감사하다.’ 우리 사위는 연구하느라고 밤잠을 못자요. 근데 참 감사하게도 주일날만 되면 아무리 바빠도 그냥 그 많은 교인들 주차요원 하느라고……. 또 우리 사위는 어른들을 잘 모셔가지고 할머니들 팬이 얼마나 많은지 몰라요. 할머니들이 와가지고 그냥 끌어안고……. 우리 딸이 그래요. “아버지, 경준이 아빠는요 여자가 많아요.” 무슨 여자가 많으냐고 그랬더니 머리 허연 여자들이 교회 들어가기 전에 경준이 아빠한테 와서 ‘고맙다. 감사하다.’

한번은 우리 딸이 그래요.
“아버지, 나 목사 딸이지?”
“그래.”
“나 그래도 제대로 신앙생활 하는 거죠?”
“그래. 너 신앙생활 잘 하잖냐.”
“근데 아버지 힘들어요.”
“왜?”
“경준이 아빠가요 십의 이조를 해요.”
그래서 제가 정색을 하고 그랬어요.
“야, 너 목사 딸 맞냐? 다른데 안 쓰고 하나님 앞에 바치는데, 그거 축복인데 네가 어떻게 그렇게 얘기를 하냐? 네 아버지가 누구냐? 목사 아니냐. 어떻게 그런 얘기를 하냐? 너 뒤돌아봐라. 하나님이 너희가정을 얼마나 축복하셨는지.”
한국 나와도 자기 돈으로 나온 적이 없어요. 학회에서 초청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은혜에요. 은혜가 크면 클수록 하나님 앞에 우리가 하는 것도 커야지 맨 날 똑같은 모습으로 살아간다고 하면 잘못된 거잖아요.

신앙생활하면서 여호수아같이 해야 돼요. 하나님이 왜 여호수아를 쓰셨을까? 첫째 겸손한 것, 둘째 모세와 항상 동행한 사람이에요. 여러분, 참 우리 교회 자랑스러운 교회입니다. 성령이 역사하는 교회입니다. 이 좋은 전통이 앞으로 계속 이어지도록 해야 합니다. 제가 지금까지 이 교회를 모세처럼 이끌어왔다고 하면, 이제 새로운 목사님이 여러분을 인도하실 것입니다. 때론 우리 앞에 홍해가 있다고 하면, 성령이 이 홍해를 가르게 하시고, 우리가 먹을 게 없을 때 만나와 메추라기를 먹여주시고, 마실 물이 없을 때 반석에서 샘물터지게 하시는 하나님, 이제 앞으로는 새로운 목사님이 여러분을 인도하실 것입니다. 그때에 ‘네가 하냐? 내가 하지.’ 하나님의 그 말씀을 기억하시고, 언제나 우리 교회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의 역사가 늘 함께하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이번 선교여행을 함께한 여러분 감사합니다. 아주 마치 친정아버지를 보내는 것처럼 여행 다니면서 왜 내 손잡고 울어? 울 거 없어. 여러분을 지켜볼 테니까 늘 감사하면서 살아가십시다. 다음 월요일부터 작정기도입니다. 여러분, 이번 작정기도 꼭 참석하시도록 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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