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LOGIN / E-MAIL / SITEMAP
 
 
작성일 : 18-08-14
십자가, 하나님의 능력(8월 12일)
 글쓴이 : 문화부
 
◆ 본문말씀 : 요한복음 11장 45-53절



할렐루야. 하나님의 은혜와 돌보심이 여러분과 함께하시길 축복합니다.

연일 40도에 육박하는 뜨거운 날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달력을 살펴보다가 가을의 시작인 입추가 지났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가을이 시작되었습니다. 우리는 이제 가을을 살고 있습니다. 한 낮의 더위가 40도 가까이 되어도 우리의 계절은 가을입니다.

그런데 이번주간 말복도 앞두고 있습니다. 아직 삼복더위가 끝나지 않았단 말입니다. 삼복더위 한 복판을 지나지만, 가을이 시작되었습니다. 저는 이 아이러니가 참 좋습니다. 무더운 찜통더위 속에서 시작하는 가을이 참 좋습니다. 

매년 삼복더위 속에서 입추를 만날 때마다,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하시는 주님의 말씀을 떠올립니다. 세상풍조가 아무리 거세게 몰아쳐도 하나님의 나라는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세상에서 마귀의 세력이 아무리 막강한 것 같아도, 하나님의 역사는 계속되고 있습니다. 무더운 날씨 속에 만나는 가을의 시작은, 우리가 비록 세상에 살아도 우리는 이미 하나님 나라 백성임을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엄청난 무더위 속에서도 조용히 시작되는 가을은, 세상의 풍파 속에서도 아랑곳하지 않고 이루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입추가 지났어도 여전히 더운 날씨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가을이 시작되었습니다. 우리는 가을을 살 수도 있고, 여름을 살 수도 있습니다. 물론 가을을 살아도, 여름을 살아도 30도를 훌쩍 뛰어 넘는 더위는 다르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더위 속에서도 가을을 살 수 있습니다. 그리고 분명한 것은 더위는 반드시 물러갈 것이란 사실입니다. 어느 때인지 몰라도, 얼마나 더위가 오래 갈지 몰라도 확실히 곧 찬바람이 불기 시작할 것입니다.

아무리 무더운 날씨도 가을을 막지 못하듯이, 세상에 가득한 그 어떤 악한 세력도 하나님의 역사를 막을 수는 없습니다. 예수님이 오심으로 하나님의 나라는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물론 세상권세 잡은 자의 세력도 여전히 막강합니다. 오히려 세상 권세가 더 막강한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험한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나라는 마치 삼복더위 한복판에 입추처럼 힘이 없어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세상 권세는 그치고 하나님의 나라는 반드시 우리가운데 도래 할 것이란 사실입니다.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여름은 계속되는 것은 아닙니다. 머지않아 가을은 우리에게 올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도 지금은 약해보여도, 결국, 하나님은 그 뜻을 이루실 것입니다. 세상풍조가 아무리 거세어도 하나님의 나라를 사는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나사로를 살리신 일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본문 45절의 “마리아에게 와서 예수께서 하신일”이란 죽었던 나사로를 살리신 일을 말합니다. 부활이요 생명이신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났습니다. 십자가를 통해 나타날 주님의 영광이 나사로의 사건을 통해 미리 선취되어 경험된 것입니다.

하지만 주님의 행적이 불편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본문 47-48절입니다.

(요 11:47-48) 47. 이에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공회를 모으고 이르되 이 사람이 많은 표적을 행하니 우리가 어떻게 하겠느냐 48. 만일 그를 이대로 두면 모든 사람이 그를 믿을 것이요 그리고 로마인들이 와서 우리 땅과 민족을 빼앗아 가리라 하니

같은 자리에서 같은 일을 보아도 이처럼 다른 법입니다. 죽었던 나사로를 살리신 일이 어떤 이들은 구원에 이르는 표적이 되었지만, 또 어떤 이들에게는 땅과 민족을 빼앗길 징조로 보였습니다.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은 로마인들이 와서 자신들의 땅과 민족을 빼앗아 갈 것을 염려합니다. 그렇지만 당시 이스라엘은 로마의 식민지였습니다. 이미 로마에 나라를 빼앗긴 상황이었습니다. 빼앗긴 것을 또 빼앗길까봐 염려하는 우스운 상황입니다. 사실 그들이 빼앗길까 염려하는 것은 나라와 민족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21장에서 악한 소작농의 이야기를 들려주십니다(악한 소작농 이야기 ; 마 21:33-46).

어떤 돈 많은 사람이 포도원을 잘 가꾸어 놓았습니다. 좋은 포도나무를 심고, 좋은 시설을 갖추었습니다. 그리고 소작인에게 세를 주었습니다.

예수님 당시 갈릴리에는 로마인들이 소유한 포도원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 포도원을 가꾸는 것은 갈릴리 유대인의 몫이었습니다. 소작농들은 한 해 농사를 마치고 나면, 수확물 중 일부를 수고비로 받고 나머지는 주인에게 보냈습니다.

그런데 이 이야기의 소작인들은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악했습니다. 먼저 소작인들이 주인에게 마땅히 주어야 할 몫을 주지 않았습니다. 포도원 주인이 자신의 몫을 좀 받을까 하여 종들을 보냈지만, 허사였습니다. 주인이 보낸 세 명의 종들을 하나는 때리고, 하나는 죽이고, 다른 하나는 돌로 쳤습니다.

보통 사람 같으면 그 소식을 듣는 즉시 달려오거나, 로마군의 도움을 받아 징벌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 주인은 참습니다. 그리고 다른 종들을 보냅니다. 이번에는 세 명이 아니라 더 많이 보냅니다. 그런데 소작인들은 그들에게도 똑같이 행동합니다.

이쯤 되면 주인은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습니다. 소작인들의 악행에 대해 불같이 분노가 치밀어 올라 당장 달려와야 했습니다. 그런데 주인은 이번에도 참습니다. 그러고는 하나밖에 없는 자기 아들을 보냅니다. 소작인들이 종들은 함부로 대했지만, 주인의 아들은 존중할 것이라 기대했습니다.

주인의 아들이 온다는 소식을 듣고 소작인들이 궁리합니다. 그런데 참으로 상상하기 어려운 악한 결론을 내립니다. 

(마 21:37-39) 37. 후에 자기 아들을 보내며 이르되 그들이 내 아들은 존대하리라 하였더니 38. 농부들이 그 아들을 보고 서로 말하되 이는 상속자니 자 죽이고 그의 유산을 차지하자 하고 39. 이에 잡아 포도원 밖에 내쫓아 죽였느니라

당시 로마법에 따르면 농장 주인이 자식을 남기지 않고 죽으면 소작인들이 소유권을 행사할 수 있었습니다. 소작인들은 아들을 잡아서 포도원 바깥에서 죽였습니다.

이 악한 소작인들은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을 상징합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좋은 포도원을 맡겼지만, 그들은 주인 뜻을 거역했습니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주인도 아니고, 포도원도 아니었습니다. 자신의 이익만이 중요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악한 계획은 뜻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주인은 포도원에 이르러 악한 소작인 모두를 진멸하고, 포도원은 다른 이들에게 맡겼습니다.

다시 본문의 이야기로 돌아갑니다. 공회로 모인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은 나라와 민족을 염려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악한 소작인들처럼 자신들의 것을 빼앗길까 궁리하고 있습니다.

대제사장들과 바리세인들은 이스라엘에서 가장 높은 자리에 있었습니다. 특별히 그들은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일을 한다는 이들이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했습니다. 백성들을 대표하고 지도한다는 사람들이 백성들의 형편과 처지를 알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고 수호한다는 이들이 로마의 식민지배 속에서 어렵게 살아가는 백성들의 처지와 형편은 알지 못했습니다.
 
그들이 모인 공회의 결과는 예수님을 죽이는 것이었습니다. 주님은 나사로를 살리셨는데, 나사로를 살리신 일이 발단이 되어 그들은 예수님을 죽이기로 합니다. 

(요 11:50)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하여 죽어서 온 민족이 망하지 않게 되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한 줄을 생각하지 아니하는도다 하였으니

그해의 대제사장 가야바가 나서서 말합니다. 제사장은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은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은 자신을 드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자신을 드려 이웃을 복되게 하는 일입니다. 그러나 이들은 다른 이를 희생시켜 자신의 이익을 지키려 하고 있습니다.
 
(요 11:51-53) 51. 이 말은 스스로 함이 아니요 그 해에 대제사장이므로 예수께서 그 민족을 위하시고 52. 또 그 민족만 위할 뿐 아니라 흩어진 하나님의 자녀를 모아 하나가 되게 하기 위하여 죽으실 것을 미리 말함이러라 53. 이 날부터는 그들이 예수를 죽이려고 모의하니라

성경은 가야바가 스스로 깨닫지 못하는 가운데 예수님의 십자가 그 깊은 뜻을 예언했다고 말합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가야바는 희생양이 될 한 사람을 다른 사람을 택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스스로 하나님의 어린양이 됩니다. 한사람이 전체를 위한다는 논리가 비슷한 것 같으나, 스스로 십자가를 질 것인가 아니면 다른 사람에게 십자가를 지울 것이 가는 하늘과 땅만큼 다릅니다.

주님은 일찍이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마 24장을 보면 두 종의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 ; 마 24:45-51)
 
주인에게는 두 사람의 종이 있었습니다. 하나는 충성되고 지혜가 있습니다. 충성되다는 말은 믿음직하고 착실하다는 뜻입니다. 또 지혜가 있다는 것은 슬기롭고 신중하다는 뜻입니다.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은 주인이 보이지 않는다고 자기 마음대로 행동하지 않습니다. 주인이 맡긴 일을 주인의 마음으로 섬깁니다. 주인이 언제 올까에 크게 마음 쓰지 않습니다. 주인이 언제 오든지 자신의 일을 잘 감당하면 됩니다. 주인이 돌아올 때 종이 이렇게 애쓰고 있는 모습을 본다면 주인은 그에게 더 귀한 역할을 맡길 것입니다.

반면에 다른 한 종은 악하다고 하십니다. 다른 종에게 있었던 충성과 지혜가 없었습니다. 그에게는 주인의 뜻을 받들어야 한다는 진심이 없었습니다. 주인의 뜻보다는 자신의 욕심이 더 컸습니다. 주인에 대한 사랑도 존경도 없었습니다.

거기다 신중함도 없었습니다. 그때그때 자신의 욕심을 채우는 것의 그의 목적이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주인이 언제 오는가 눈치를 보는 것이 그에게는 큰 일이었습니다. 주인의 눈을 속여 자신의 욕심을 채우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주인이 언제라도 들이닥칠지 몰라 조심조심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주인이 늦어지는 것을 알아차리고는 마음 놓고 악행을 저지르기 시작했습니다.

두 종의 행동에서 드러나는 결정적 차이가 있습니다. 충성되고 지혜로운 종은 자신에게 주어진 모든 것이 사실은 주인 것임을 늘 잊지 않았습니다. 그에게 맡겨진 사람들도 사실은 주인의 사람들이고, 자신이 눕고 먹고 자고 일하는 모든 것이 주인의 것임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모든 일을 주인의 뜻을 따라 행했습니다. 물질도 주인의 뜻에 따라 썼고, 맡기신 사람들과 일들도 주님의 마음으로 이끌었습니다.

그러나 악한 종은 주인의 것을 자신의 뜻대로 행했습니다. 주인의 하인들을 자신의 하인들처럼 부렸으며, 주인의 재물을 자신의 욕심을 위해 사용했습니다. 주인의 사람들에게 자신을 섬기도록 강요하고 때렸습니다. 섬기라고 맡겨 주신 사람들을 학대하고 이용하고 착취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주인이 돌아왔습니다. 아무런 기별 없이 뜻밖의 시각에 주인이 돌아왔습니다. 그때, 충성되고 지혜로운 종은 반가움과 기쁨으로 주인을 맞이합니다. 주인이 온 것이 그에게 큰 기쁨이 됩니다. 주인도 그 종으로 기뻐합니다. 그러고는 전 재산을 그 종에게 맡깁니다. 어떤 것을 맡겨도 잘 감당할 것이라는 성실과 충성이 입증되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다른 종은 두려워합니다. 주인의 등장은 결코 반갑지 않습니다. 주인이 돌아온 것은 자신의 자리를 찾아 온 것이지만, 악한 종은 두렵고 불안합니다. 자기 것이 아닌 것을 자기 것 인양 오용한 것에 대한 대가를 치룰 때가 된 것입니다.

물론 악한 종도 생각과 계산이 있었을 것입니다. 주인 오기 전에 잘 정돈해 놓으면 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만 때를 놓치고 말았습니다. 그 때를 맞춰 준비하는 일은 애당초 불가능했습니다. 돌이켜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을 그때 바로 돌이켜야 했습니다. 내일부터 잘하지, 다음 일부터 잘하지 하는 마음으로 미루다가 결국 준비되지 않은 때에, 깨어있지 못한 때에 주인이 돌아오고 말았습니다.

주인은 두 종들의 일들을 보고받고 그에 상응하는 처분을 내립니다. 먼저 충성된 종에게는 마 24:47절입니다.
 
(마 24:47)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주인이 그의 모든 소유를 그에게 맡기리라

그리고 악한 종에게는 마 24:51절입니다.

(마 24:51) 엄히 때리고 외식하는 자가 받는 벌에 처하리니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

과연 우리는 어떤 모습일까요? 얼핏 보기에는 내 인생은 나의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우리 모두는 청지기입니다. 내 것은 하나도 없다는 뜻입니다. 내가 가진 모든 것은 다 하나님께서 맡기신 것들입니다. 우리는 100년이 못되는 잠시 동안만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생명, 몸, 마음, 재산 등등을 사용하는 것뿐입니다. 그리고 머지 않는 장래에 모두를 두고 떠나야만 합니다. 주인을 바로 아는 마음이 복을 짓는 마음입니다.

그런데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은 주인이 누구인지를 잃어버렸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을 십자가에 달아 죽였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자신을 드려 하나님께 영광이 되어야 하거늘, 그들은 하나님을 십자가에 달아 자신의 이익과 영광을 지키려 했습니다. 결국 그들은 모두 패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은 스스로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 요즘 우리는 주일마다 고전 1:18절 말씀을 깊이 생각합니다.

고전 1:18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십자가가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능력됨을 믿으십니까? 그럼 믿음대로 행하는 여러분 되시길 바랍니다. 십자가의 도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십자가가 하나님의 능력임을 믿는 사람이라면 스스로 십자가를 지려 할 것입니다. 그러나 십자가 미련한 것이라 생각한다면, 그 십자가를 다른 사람에게 미루려 할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여름을 살 수도 있고, 가을을 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여름은 가고 가을이 오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세상을 살 수도 있고, 하나님 나라를 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세상 권세는 스러지고 하나님나라는 반드시 우리가운데 임하시리라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주님을 따라 십자가를 질 수도 있고, 다른 사람에게 십자가를 미룰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능력 안에 사는 사람은 스스로 십자가를 지는 사람입니다.

오늘 내 모습은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의 모습인지, 주인의 눈을 피해 내 멋대로 사는 악한 종의 모습인지 돌아보면 좋겠습니다. 삶의 심지를 굳게 세우고, 지혜 있고 충성된 종이 되어, 하나님의 능력 안에 사시길 축원합니다.

 
   
 

 


생명의말씀
목회자칼럼
주일설교
예배찬양
강단어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