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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8-08-22
네 이름이 무엇이냐(8월 19일)
 글쓴이 : 문화부
 
◆ 본문말씀 : 마가복음 5장 1~9절



할렐루야. 하나님의 은총과 평화가 우리 가운데 함께하시기를 축복합니다.

하루는 예수님과 제자들이 탄 배가 풍랑을 만났습니다. 오늘 본문 위쪽(막 4:35-41)을 보면, 예수님은 날이 저물어 배를 타셨습니다. 하루 종일 해변에서 하나님 나라 복음을 전하시던 그 날 밤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무리와 떨어져 홀로 계실 시간과 장소를 찾으셨습니다. 홀로 고요한 가운데 하나님 앞에 서기를 원하셨습니다. 기도의 시간이 필요했고, 쉼의 시간도 필요하셨을 것입니다. 그래서 항구에서 배를 띄워 반대편으로 가시고자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습관을 따라 기도하셨습니다(눅22:39). 주님을 따르는 우리도 홀로 하나님 앞에 서는 습관이 필요합니다. 새벽시간은 하루의 일상을 시작하기 전에 주님과 만나기 좋은 시간입니다. 우리도 날마다 시간마다 순간마다 하나님 앞에 서는 습관이 생기면 좋겠습니다.
우리의 하루는 이런 저런 바쁘고 분주한 일들로 급한 일에 쫓겨 허겁지겁 하루를 보내기 쉽습니다. 그런데 하나님 앞에 서는 습관을 갖게 되면, 아무리 바빠도 일에 쫓기지 않고, 주님의 동행하심 속에서 복된 날을 만들어낼 힘과 능력을 덧입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무리를 피하여 한적한 곳을 찾고자 하셨습니다. 어찌나 피곤하셨던지 풍랑을 만난 배위에서도 곤히 주무시고 계셨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기도하려고, 하나님 앞에서의 시간을 만들려고 해도 우리 뜻대로 잘 되는 것은 아닙니다. 기도하시고, 쉬기도 하시려 했던 주님의 계획은 풍랑 앞에서 이룰 수 없었습니다.

우리가 오늘 이 시간에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다는 것은 하나님의 큰 은혜입니다. 우리는 생각하기에 내가 뜻을 세워, 이 시간 나아온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여기 우리가 하나님 앞에 있다는 사실은 결코 당연하지 않습니다. 믿음의 눈으로 살펴보면 하나님의 큰 은혜와 도우심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풍랑을 피해 바다 건너편에 이르렀지만, 예수님과 제자들에게 조금의 여유도 허락되지 않았습니다. 거라사지방에 이르렀을 때에 더러운 귀신들린 이가 예수님과 일행들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귀신들린 이 사람은 무덤 사이에서 머물렀는데, 힘이 어찌나 센지 고랑과 쇠사슬로도 매어둘 수 없었습니다.

[외적 혼란]
제자들이 배에서 만난 풍랑은 세상에서 불어오는 어려움과 혼란을 상징합니다. 믿음의 길은 십자가의 길이고 순교자의 삶입니다. 우리도 때로는 십자가를 감당해야 할 때가 있었습니다. 또 순교의 삶을 결단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배에 타고 있던 제자들은 노련한 뱃사람들이었습니다. 베드로와 안드레, 야고보, 요한에 예수님을 처음 만난 그 때도 배를 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풍랑 앞에서는 속수무책이었습니다.

이런 상황은 우리도 종종 경험합니다. 너무도 잘 알던 일에서, 너무도 익숙하던 것에서 예기치 않은 어려움에 당황할 때가 있습니다. 때로는 외부로부터 풍랑처럼 몰아치는 어려움은 우리 삶의 자리를 송두리째 흔들 만큼 위협적이기도 합니다.

교회도 외부로부터 오는 어려움으로 혼란을 겪기도 합니다. 우리가 가진 지식과 지혜, 재력과 인맥을 다 동원해 해결해보려 하지만 역부족일 때도 있습니다. 노련한 뱃사람도 어쩔 수 없는 풍랑 앞에서 주님은 바람과 바다를 꾸짖어 잔잔케 하셨습니다. 

(막 4:39) 예수께서 깨어 바람을 꾸짖으시며 바다더러 이르시되 잠잠하라 고요하라 하시니 바람이 그치고 아주 잔잔하여지더라

우리 삶에 닥치는 어려운 문제들을 풀어낼 지혜는 예수님께 있습니다. 우리가 우리 삶의 고단함을 극복할 힘과 용기도 예수님께 있습니다. 우리 믿음의 사람들의 구원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께 있습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구원자 되시기 때문입니다. 

[내적 혼란]
그런데 우리에게는 밖에서 몰아치는 폭풍우만이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 마음에는 여러 갈등과 혼란이 가득합니다. 오늘 우리가 생각하는 거라사 귀신들린 사람은 우리가 겪게 되는 내적인 갈등과 혼돈을 상징합니다. 우리 삶에 밖에서 몰아치는 풍파도 큰 위협이지만, 내적으로 겪게 되는 혼란과 갈등도 큰 문제입니다.

오늘날 많은 이들이 우울증, 무기력증으로 고통받고 있습니다. 무엇을 해야 할지 어디로 가야할지 갈피를 못 잡는 사이에, 우리 속에는 엉뚱한 것이 자리잡아 주인 노릇합니다. 어떤 이들은 돈에, 어떤 이들은 명예와 권력에, 어떤 이들은 학식이나 건강에 집착합니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얻으면 얻을수록 더 큰 결핍에 사로잡혀 만족이 없습니다.

거라사 지방의 귀신들린 사람을 사로잡고 있던 것은 한두 가지가 아니었습니다. 오늘 본문 9절입니다.

(막 5:9) 이에 물으시되 네 이름이 무엇이냐 이르되 내 이름은 군대니 우리가 많음이니이다 하고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속에서 주인노릇하려는 것이 많으니 평안할 겨를이 없습니다. 군대와 같이 너무나 많은 귀신이 그 사람을 사로잡고 있었습니다. 너무나 많은 더러운 것들에 매어있으니 평안할 겨를이 없었습니다. 5절을 보면 "밤낮 무덤 사이에서나 산에서나 늘 소리 지르며 돌로 자기의 몸을 해치고 있었더라"전합니다. 

주님은 그를 향해 "더러운 귀신아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귀신들린 사람이 온전해졌습니다. 15절입니다.

(막 5:15) 예수께 이르러 그 귀신 들렸던 자 곧 군대 귀신 지폈던 자가 옷을 입고 정신이 온전하여 앉은 것을 보고 두려워하더라

세상에서 우리를 미혹하는 거짓 주인들은 그 수가 아무리 군대와 같이 많아도 우리에게 참된 위로와 평안이 되지 못합니다. 오직 예수님 한분만이 우리의 구원되십니다. 인생은 험한 풍파와 위협이 늘 도사라고 있습니다. 때로는 밖으로부터, 때로는 안으로부터 우리를 위협합니다. 그러나 예수님 안에 있는 우리는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요 힘이시니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시46:1). 예수님 안에서 우리는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덧입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9절을 다시 보면 “네 이름이 무엇이냐?”는 물음 앞에 이 사람은 “군대”라고 답합니다. 그러나 사실 군대는 그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엉뚱한 것에 홀려서 자기 자신이 본래 누구인지도 잃어버렸습니다. 자기 아닌 자기를 지배하는 것이 자기라 착각하고 있었습니다.

오늘 주님이 여러분께 네 이름이 무엇이냐 물으신다면 여러분은 무엇이라 대답하시겠습니까?

혼수상태에 빠져 사경을 헤매고 있던 어떤 부인이 불현듯 하늘로 들려 올려져 재판석 앞에 서 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너는 누구냐?” 한 목소리가 물었습니다.
“저는 시장의 부인입니다”라고 부인은 대답했습니다.
“네가 누구의 부인이냐고 묻지 않고 네가 누구냐고 물었다.”
“네 자녀의 어머니입니다.”
“누구의 어머니냐고 묻지 않고 누구냐고 물었다”
“교사입니다.”
“직업이 무엇이냐고 묻지 않고 누구냐고 물었다.”
그렇게 문답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부인이 무슨 대답을 하든지 간에, “네가 누구냐?”라는 그 질문에 만족할 만한 대답이 되지 못하는 것 같았습니다.
“저는 그리스도인입니다.”
“네 종교가 무엇이냐고 묻지 않고 네가 누구냐고 물었다”
“저는 매일 교회에 나갔고 항상 가난한 이들을 도왔습니다”
“무엇을 했느냐고 묻지 않고 누구냐고 물었다”
부인은 그 시험에 떨어진 것이 분명했습니다.
지상으로 되돌려 보내지게 되었으니까 말입니다.
병에서 회복되자. 부인은 자기가 누구인지 찾아내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리고 그 결심은 모든 것이 달라지게 만들었습니다.

세상은 나 아닌 내 주위의 것으로 나를 평가합니다. 사람들은 학력, 직업, 재산, 연봉, 외모, 가족사항등에 관심이 많습니다. 그래서 어느새 우리도 그런 시선에 익숙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중심을 보십니다.

하나님은 내가 누구냐고 묻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누구처럼 되라고 하지 않으십니다. 그저 가장 ‘나’다운 삶을 살기 원하십니다. 우리는 다른 것들을 쫓는 사이 하나님께서 나에게만 주신 나를 잃어버렸습니다.

나는 없고 다른 사람이 가진 것들을 쫓는 사이, 나에게만 주신 것들은 다 잃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많은 것을 얻게 되었지만, 나를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내 직업이, 재산이, 자녀들이 나를 대신하게 되었습니다. 나를 잃어버리고, 군대가 내 노릇을 하고 있었습니다.

거라사의 광인처럼 우리도 예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나보다 나를 더 잘 아시는 주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나보다 나를 더 사랑하시는 주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나보다 더 내게 관심이 많으신 주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가 가진 모든 것들은 본래 다 하나님의 것이었습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누구보다도 더 잘 아십니다. 내 삶을 어떻게 쓰면 좋을지, 내 감정을 어떻게 다스리면 좋을지, 내 병을 어떻게 다루면 좋을지, 그 사람하고 관계는 어떻게 하면 좋을지 주님께서 더 잘 아십니다.

우리는 내 삶의 주인 되신 예수님과 사귀면서 내가 누구인지 점점 깊게 깨닫게 됩니다. 나는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 받은 존재입니다. 그러니 주님을 깊이 사귈수록 우리는 내 속에 감추인 깊은 아름다움을 발견 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귀신들린 사람은 무덤사이에 거하고 있었습니다. 성경은 이 사람의 처지를 이렇게 전합니다. 3-5절입니다.

(막 5:3-5) 그 사람은 무덤 사이에 거처하는데 이제는 아무도 쇠사슬로도 맬 수 없게 되었으니, 이는 여러 번 고랑과 쇠사슬에 매였어도 쇠사슬을 끊고 고랑을 깨뜨렸음이러라 그리하여 아무도 그를 제어할 힘이 없는지라. 밤낮 무덤 사이에서나 산에서나 늘 소리 지르며 돌로 자기의 몸을 해치고 있었더라.

우리는 이 구절을 통해서 이 귀신들린 사람의 속사정을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그는 죽음이 자리잡고 있는 무덤 사이에 살았습니다. 무덤들 사이에 살고 있는 사람의 영혼은 어떤 상태일까요? 어둠과 죽음이 그 사람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우울증을 호소하는 사람들의 경우에 그의 영혼이 어둠, 죽음, 두려움의 무덤에 갇혀있습니다.

그는 보통사람들이 갖지 못한 힘과 능력을 갖고 있었습니다. 고랑과 쇠사슬에 매였어도 쇠사슬을 끊고 고랑을 깨뜨릴 만큼의 큰 능력이 그에게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그런 능력을 잘 쓰지 못합니다. 그에게 있는 힘과 능력으로 자신을 괴롭게 합니다. 무덤 사이에서 소리를 지르며 스스로 자기 몸을 해치고 있었습니다.

거라사의 귀신들인 사람은 인생의 중심을 엉뚱한 것에 빼앗긴 사람의 모습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더 많은 것을 갖고자, 더 많은 것으로 쌓아두고자 욕심을 부리지만 가지면 가질수록, 쌓이면 쌓일수록 삶은 괴로워지고 인생은 피폐해집니다. 인생의 주인을 잘못 정한 탓입니다.

이 사람이 머물던 무덤은 죽은 이들이 모여 있는 곳입니다. 무덤에 머무는 이유는 사람을 피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밤낮없이 소리를 질렀습니다. 소리를 지른다는 것은 누군가 만나고 싶고, 자신을 봐주기를 바라며, 도움을 요청하고 있다는 것을 뜻합니다.

이 사람은 한편으로는 홀로 있기 위해 물러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사람들과 관계 맺기를 원합니다. 어찌 보면 이 군대 귀신들린 사람은 오늘날에는 찾아보기 어려운 옛날이야기처럼 들릴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조금만 주위를 살펴보면 허다하게 많은 이들이 무엇을 위해 사는지,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는 채 바쁘고 분주하게만 살고 있습니다. 돈이 있지만 더 가지려하고, 집이 있지만 더 가지려 하고 지위가 있지만 더 높아지려고만 합니다.

너무나 바쁜 탓에 왜 돈이 필요한지, 왜 명예와 권세가 필요한지 생각해볼 겨를도 없이 지냅니다. 간혹 컴퓨터게임이나 도박에 빠진 사람들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컴퓨터 게임을 하는 까닭은 즐거움을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게임에 빠져버린 아이는 왜 그 아이템을 가져야 하는지, 왜 그 캐릭터를 가져야 하는지 돌아볼 겨를이 없습니다. 처음에 재미를 위해 시작했지만, 나중에는 큰 재미도 없고, 일상생활에도 크게 영향 받지만 그저 게임을 하고 있을 뿐입니다. 컴퓨터를 꺼버리면 아무 소용없는 것들을 가지려 쌓아두려 혈안이 되어 삶을 망가뜨립니다.

도박에 중독된 사람도 비슷합니다. 도박을 하는 사람들은 왜 도박을 하기 시작했을까요? 손쉽게 많은 돈을 벌기 위해서 도박을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도박에 중독된 사람은 손에 돈이 있으면 도박을 멈추지 못합니다. 돈을 다 잃고 나면 그 때서야 어쩔 수 없이 도박을 멈춥니다. 돈을 벌기 위해 도박을 하는 것이면 돈이 많이 생겼을 때에 도박을 멈추어야 합니다. 거꾸로 돈을 많이 벌기 위해 도박을 하지만 돈이 생기면 도박을 멈추지 못하고, 돈이 다 없어져야 도박을 멈추는 일이 반복됩니다. 

삶의 중심을 엉뚱한 것에 빼앗긴 사람의 모습입니다. 그런데 게임이나 도박에 중독된 사람도 마음 한편에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그러나 사탄의 세력은 죄의 힘은 너무나 치밀하고 강하기 때문에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인생의 주인을 바로 찾아야 합니다. 우리 삶의 주님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주님만이 내 삶을 가장 복되고 아름답게 살 수 있는 길로 인도하십니다. 그러니 우리는 부단히 우리 구주 예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오늘날 많은 현대인들이 세상 풍조에 속아 자기 자신을 잃어버린 채 살고 있습니다. 복잡하고 각박한 현대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열심히 사는 사이에 자기를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돈은 좀 생겨서 더 이상 배고플 걱정은 없지만, 역설적이게도 영혼의 허기를 채우지 못해서 방황합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 받은 인간은 하나님의 품에 깃들기 까지 참 평화와 기쁨을 누릴 수 없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를 하나님에 이끄는 길과 진리 생명이 되십니다.

군대 귀신 들린 사람이 예수님을 만나자 본래 자신의 모습으로 돌아왔습니다. 주님은 우리가 가장 나답게 살 수 있는 길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내 삶의 참된 만족은 돈, 명예, 권세와 같은 것으로 결코 찾을 수 없습니다.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주시는 구원의 생명만이 우리를 참 기쁨과 만족에 이르게 하십니다. 그러니 우리는 부단히 예수님 안에 머물기 위해 마음을 모아야 합니다.
 
예수님 안에 하나님의 구원과 능력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만나면 우리 삶의 아름다움이 회복됩니다. 예수님을 만나면 속에 숨어있던 달란트가 빛나기 시작합니다. 그러니 오늘도 부단히 예수님을 향하시기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주시는 구원의 기쁨과 능력을 충만히 누리는 복된 나날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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