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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8-11-24
그 이름을 믿음이 낫게 합니다(11월 11일)
 글쓴이 : 문화부
 
◆ 본문말씀 : 사도행전 3:11-16, 25-26



할렐루야.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오늘도 여러분과 함께하시길 축원합니다.

여우가 숲 속에서 호랑이를 만났습니다. 호랑이에게 잡아먹히게 된 여우는 발이 땅에 붙었습니다. 하지만 지혜로운 여우는 기지를 발휘해 금방 표정을 바꾸며 소리쳤습니다. “건방진 호랑이야, 내가 누군지 알겠냐?” 호랑이는 얼떨떨했습니다. 예전에 알던 여우가 아니었습니다. “내가 누군지 보여주지, 따라와 봐!” 여우의 말에 호랑이는 어슬렁어슬렁 따라갔습니다.

그런데 내로라하던 맹수들이 여우를 보자 슬금슬금 도망치는 것이었습니다. 호랑이는 놀랐습니다. 여느 때의 여우가 아니었습니다. 호랑이는 슬그머니 뒤로 빠졌습니다. 곁눈질을 하던 여우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숲으로 사라졌습니다.

여우를 보자 숲 속 짐승들이 모두 물러섰습니다. 그렇지만 사실 그것은 여우의 능력이 아니었습니다. 호랑이의 능력이었습니다. 우리 신앙인의 삶도 그렇습니다. 우리에게 있는 능력은 내게서 비롯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 입니다.

사실 엄밀히 말하면, 이미 내 것이라고 생각하며 가지고 있는 모든 것도 따지고 보면 내 것이 아닙니다. 인생은 본래 내 것이라고 할 만한 것이 없습니다. 내 생명도 내가 선택하고 노력해서 얻는 것이 아닙니다.

내 몸도 내가 애쓰고 수고함으로 쓰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내 몸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습니다. 내 머리 속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 생각하게하고 일하게 하는지 알지 못합니다. 내 몸 속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 숨을 쉬고, 피가 돌며, 힘을 만드는지 알 수 없습니다.

우리가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먹어야 하는 음식도 실상은 다른 것들의 생명입니다. 우리의 생명은 다른 이들의 생명에 빚을 지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은 우리가 노력한 것에 대한 댓가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로 주신 것입니다.

인생의 시작에서 우리가 내 것이라고 가지고 시작한 것이 없습니다. 모든 것이 은혜입니다. 내게 생명이 있음에, 오늘의 내가 있고, 오늘의 삶이 있음에 감사할 것 뿐입니다. 내게 있는 모든 것은 다 은혜입니다. 은혜를 은혜로 알고 감사하는 것이 지혜입니다.

감사는 은혜를 더욱 풍성하게 합니다. 그래서 지혜로운 사람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입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주신 것임을 아는 사람은 어떻게 써야 하는지도 잘 압니다. 은혜로 맡겨 주신 것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씁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더 큰 것으로, 더 복된 것으로, 더 풍성한 것으로 맡겨 주시기 때문입니다.

(신 6:24)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이 모든 규례를 지키라 명령하셨으니 이는 우리가 우리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여 항상 복을 누리게 하기 위하심이며 또 여호와께서 우리를 오늘과 같이 살게 하려 하심이라
“모든 규례를 지키라 명령”하신 것도, “우리가 우리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신 것도 이유가 뭐라고요? 나로 “항상 복을 누리게 하기 위하심”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라 하신 것은 내가 복 받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은 곧 우리 자신을 위한 삶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로 예배하는 인생, 헌신하는 인생, 봉사하는 인생으로 부르신 것은 우리에게 복을 주기 위함입니다.

그런 하나님의 사랑이 아주 극적으로 분명하고도 확실하게, 취소될 수 없는 방식으로 나타난 것이 예수 그리스도 사건입니다. 하나님이 사람으로 오신 것은 나를 위함입니다. 사람으로 죽을 인생에서 벗어가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죄로 인해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잊고 지내는 인생들을 위해 하나님께서 친히 우리가운데 오셨습니다. 하나님 자신을 우리에게 선물로 주시려고, 하나님이 우리를 찾아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찾아오신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나를 위해 찾아오신 하나님입니다. 하나님 자신을 우리에게 주시려고 예수님이 오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이름에는 능력이 있습니다. 예수의 이름에는 기쁨과 권세가 있습니다.

<찬 91장>
슬픈 마음 있는 사람 예수 이름 믿으면
영원토록 변함없는 기쁜 마음 얻으리
거룩하신 주의 이름 너의 방패 삼으라
환난 시험당할 때에 주께 기도드려라
예수의 이름은 세상의 소망이요 예수의 이름은 천국의 기쁨일세

성전 미문, 아름다운 문 앞에는 나면서부터 걷지 못하는 한 사람이 앉아 구걸하고 있었습니다. 성전은 하나님께 예배하는 곳이지만, 그 사람은 성전 앞에서 구걸하고 있었습니다. 성전에서 구걸하는 사람은 외곡 된 인생을 상징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생명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받아 지음 받은 인생이 복되게 사는 비결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입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라” 하신 말씀처럼 우리가 하나님을 경외하며 살 때에 하나님이 주고자 계획하신 놀라운 은혜와 축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인생이 죄에 속았습니다. 세상 풍조에 속았습니다. 내 눈에 좋은 것을 얻기 위해서 내 눈에 좋은 것을 좇아 살았습니다. 그래서 열심히 돈을 좇아 살았습니다. 학벌을 좇아 살았고, 명예를 좇아 살았습니다. 그런데 평생을 돈 버는 일에 써도 만족이 없습니다. 학벌도 명예도 권세도 얻게 되면 기쁨도 잠시 뿐, 곧 허무하고 허망한 낙심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더 가지려 합니다. 더 높아지려 합니다.
 
그러나 더 많이 갖고, 더 높이 올라가도 달라지지 않습니다. 허망한 것에 마음을 빼앗겨 온통 바쁘고 분주한 인생은 마치, 성전 앞에서 구걸하는 앉은뱅이를 닮아 있습니다. 그는 살기 위해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는 열심히 구걸했습니다. 주위 사람들은 걷지 못하는 그가 살아갈 수 있도록 성전미문에 데려다 주었습니다.

어떤 날은 벌이가 신통치 않았을 것이고, 또 어느 날은 큰돈을 얻기도 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는 또다시 성전 미문에서 구걸해야 했습니다.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성전미문에 앉아 구걸하는 일이었습니다. 돈을 많이 벌어도, 적게 벌어도 그가 구걸해야만 먹고 살 수 있다는 상황이 크게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베드로와 요한을 만났습니다. 기도하는 신실한 제자들이니, 도움을 좀 받을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베드로와 요한은 이상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자신들에게는 돈이 없다고 했습니다. 실망으로 고개를 떨구는 순간 자신에게 있는 것을 주겠다고 했습니다.

(행 3:6) 베드로가 이르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하고

그러자 예수 이름의 능력이 그에게 나타났습니다.

(행 3:7-10) 7 오른손을 잡아 일으키니 발과 발목이 곧 힘을 얻고 8 뛰어 서서 걸으며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가면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송하니 9 모든 백성이 그 걷는 것과 하나님을 찬송함을 보고 10 그가 본래 성전 미문에 앉아 구걸하던 사람인 줄 알고 그에게 일어난 일로 인하여 심히 놀랍게 여기며 놀라니라

베드로가 예수 이름으로 오른손을 잡아 일으키자 그는 벌떡 일어날 수 있었습니다. 날 때부터 못 걷던 이가 걷기도하고 뛰기도 했습니다. 할렐루야! 예수 이름의 능력입니다. 더 놀라운 일은 성전 미문 앞에 앉아 구걸하던 인생이, 성전 안으로 뛰어 들어가 하나님을 찬양하는 인생이 되었습니다.

동전 몇 푼 바라던 인생이 하나님을 찬양하는 인생이 되었습니다. 예수 이름의 능력을 만나자, 그렇게 간절히 원하던 동전 몇 푼은 이제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바라던 것은 동전 몇 닢 이었지만, 하나님이 그에게 준비하신 것은 더 놀라운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이 그에게 이뤄주신 일은 동전 몇 푼에 비교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도 예수님을 만나야 합니다. 우리도 예수이름의 능력을 경험해야 합니다. 우리도 눈을 들어 하나님이 우리에게 이루고자 하시는 뜻을 구해야 합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라 하셨으니, 전심으로 주님을 향해야 합니다. 예수 이름의 능력이 우리를 살게 합니다. 

앉은뱅이 거지에게 나타난 놀라운 일로 많은 사람들이 솔로몬 행각으로 몰려들었습니다. 성전 미문에 앉아 구걸하던 사람이 일어났다는 소식이 퍼져나갔습니다. 뿐만 아니라 성전으로 함께 들어가며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양한다고 하니 놀라움은 크게 번져 갔습니다.
 
예루살렘 사람들은 베드로와 요한을 주목했습니다. 베드로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예수 이름의 구원, 예수 이름의 능력을 전할 기회로 삼습니다.

(행 3:12) 베드로가 이것을 보고 백성에게 말하되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일을 왜 놀랍게 여기느냐 우리 개인의 권능과 경건으로 이 사람을 걷게 한 것처럼 왜 우리를 주목하느냐

모인 사람들을 향해 말합니다. 우리 개인의 힘과 능력이 이 사람을 걷게 한 것이 아닌데, 왜 자신들을 주목하느냐고 말합니다. 그리고 선포합니다. 앉은뱅이가 일어나게 한 능력은 예수이름의 능력이라고 선포합니다.

(행 3:16) 그 이름을 믿으므로 그 이름이 너희가 보고 아는 이 사람을 성하게 하였나니 예수로 말미암아 난 믿음이 너희 모든 사람 앞에서 이같이 완전히 낫게 하였느니라

예수 이름을 믿음이 기적을 만들었습니다. 예수의 이름이 이 사람을 낫게 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예수의 이름을 귀하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귀하게 여기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모욕과 멸시 천대 속에 생명의 주를 죽이고 말았습니다.

(행 3:13-15) 13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 곧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그의 종 예수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너희가 그를 넘겨 주고 빌라도가 놓아 주기로 결의한 것을 너희가 그 앞에서 거부하였으니 14 너희가 거룩하고 의로운 이를 거부하고 도리어 살인한 사람을 놓아 주기를 구하여 15 생명의 주를 죽였도다 그러나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그를 살리셨으니 우리가 이 일에 증인이라

하나님은 하나님의 좋은 것을 우리에게 주시기 위해 우리 가운데 오셨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죄에 눈이 가리워 우리 삶에 참된 좋은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앉은뱅이 거지가 동전 몇 푼을 귀하게 여기듯, 우리도 그렇게 살아왔습니다. 뿐만 아니라 동전 몇 푼을 찾는 욕심에 미혹되어 생명의 주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게 했습니다. 우리의 죄가, 우리의 욕심이 생명의 주를 십자가에 못 박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생명의 주를 살리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의 주님이 부활하신 것은 하나님께서 여전히 우리를 사랑하시고, 하나님께서 여전히 우리를 구원하시기 원하시며, 하나님이 여전히 우리에게 좋은 주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지혜와 우리의 생각은 다릅니다. 우리의 소원과 하나님의 뜻은 다릅니다. 우리가 바라는 것과 하나님이 우리게 주시길 원하시는 것과 다릅니다.

사람의 계획은 동전 몇 푼을 얻을 궁리하는 것이지만, 하나님의 지혜는 그 사람이 일어나 뛰고 걷고 하나님을 찬양하는 삶이 되게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인간의 계획은 생명의 주를 십자가에 못 박는 악한 것이었지만, 하나님의 뜻은 십자가와 부활로 모든 믿는 자들을 복되게 하심이었습니다.

그러니 우리도 마음을 돌이켜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베드로는 우리에게 권면합니다. 19절입니다.

(행 3:19) 그러므로 너희가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 없이 함을 받으라 이같이 하면 새롭게 되는 날이 주 앞으로부터 이를 것이요

결혼하고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다는 초등학교 동창생이 있습니다. SNS로 간간이 소식만 듣고 있었는데, 얼마 전에 그가 교회에 다니게 된 이유를 알게 되었습니다. 페이스북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그의 집은 동내가 알아주는 부자였습니다. 자동차가 귀하던 시절인데 그의 집에는 아빠차, 엄마차가 따로 있었고, 운전해 주시는 분도 계셨습니다. 그는 늘 반장이었고, 공부도 잘했습니다. 당연히 지기 싫어했고 거만했습니다. 우리는 그를 싫어하면서도 부러워했습니다.
 
외국에서 대학을 마친 그는 엘리트 의식에 젖어 있었습니다. 잘 나가던 몇몇 동창들만 만나곤 했습니다. 늦게 결혼했지만 앞을 막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자신감에 차 있던 그에게 시련이 찾아온 것은 첫아들을 낳은 뒤라고 했습니다.

뇌성마비 아이를 낳은 것입니다. ‘이럴 수가!’ 아이를 치료하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했지만 실패만 거듭했습니다. 자신의 인맥을 모두 동원했지만 소용없었습니다. 차츰 자신감은 없어지고 원망과 저주가 늘었습니다. 내가 무슨 죄를 지었다고! 처음으로 하나님을 생각하고 잔인한 하나님을 원망했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5년을 버티면서 삶의 뒤편에는 장애를 가진 아이와 그들의 가족이 수없이 많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들의 눈물과 헌신이 세상의 슬픔과 아픔을 대신 감당하고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하나님을 만났다고 했습니다.

믿음의 사람은 사람의 시선, 세상의 기준으로 보고 판단하는 버릇을 고쳐야 합니다.

우리가 보는 것과 하나님이 보시는 것은 다릅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하나님의 생각은 다르며, 우리의 계획과 하나님의 섭리는 다릅니다. 그러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이 인생을 복되게 사는 비결입니다.

(행 3:25-26) 25 너희는 선지자들의 자손이요 또 하나님이 너희 조상과 더불어 세우신 언약의 자손이라 아브라함에게 이르시기를 땅 위의 모든 족속이 너의 씨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하셨으니 26 하나님이 그 종을 세워 복 주시려고 너희에게 먼저 보내사 너희로 하여금 돌이켜 각각 그 악함을 버리게 하셨느니라

베드로는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신 것은 우리에게 복을 주시기 위함이라고 말합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과 계획을 알아차리는 것이 하나님의 복과 은혜를 누리는 비결입니다.

예수의 이름은 우리에게 주시는 축복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께서 들으시고 응답하십니다. 기도의 계절에 예수 이름에 가득한 능력을 충만히 맛보며 누리는 여러분 되시길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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